혼자살이

혼자살이1. 자취 시작 전 체크리스트 5가지

anolosis 2021. 5. 31. 15:04

 

아... 혼자 살고 싶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겨워져서 또는 부모님 눈칫밥 먹기가 힘들어서, 밥벌이를 위해 주거지를 옮겨야해서 등, 언젠간 혼자 살기를 시작할 때가 온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명언이 있다. "혼자 살면 숨쉬는 것도 다 돈이다."라고. 그저 막연히, 혼자 살고 싶어서 안락한 보금자리를 뛰쳐나왔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혼자 살기 전 체크리스트5]

✅ 주거지 마련을 위한 자금이 있는가? - 서울이라면 보증금 1천원만원 이상, 월세 50만원 내외

✅ 혼자 청소할 수 있는가? - 먼지털이 및 바닥청소는 이틀에 한 번, 화장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 혼자 밥을 해먹을 수 있는가? - 배달앱을 이길 수 있는 통장이 없다면 해먹어야 한다.

✅ 혼자 헤쳐나갈 생활력이 있는가? - 각종 공과금 및 서류 처리, 집주인 및 이웃과의 협의 등

✅ 혼자 살아낼 정신력이 있는가? - 혼자살이는 외롭다.

 

© jonathanborba, 출처 Unsplash

처음엔 다 이런집에서 혼자 살이를 시작할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않다.

 

 

 


Step1. 경제력 갖추기 -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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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다면 비용이 만만치않다.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환경을 갖추려면 서울 기준으로 보증금 1천만원 이상, 다달이 월세로 50만원을 납부할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지방에 산다면 그나마 비용 부담이 덜하지만, 초기자본이 많이 드는건 똑같다.) 최소 기준으로 고시원을 선택한다고 해도 월 30-40만원은 든다. 고작 내 몸 뉘일 자리 하나 마련하는데도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자리만 마련한다고 끝이 아니다. 침대, 이불, 책상, 의자 등 살기 위해 기본으로 갖춰야 할 가구도 사야하고, 물건을 바닥에 늘어놓을 수 없으니 각종 수납용품도 사야한다.

자리를 해결하고 나면 먹는 문제가 남는다. 자취를 시작하는 이들의 로망 중 하나가 내가 먹고 싶은걸 그럴듯하게 차려먹는 거다. 하지만 혼자 먹고 살기 위해 사야할게 너무 많다. 일단 밥을 해먹기로 결심했으면 밥솥을 사야한다. (냉장고가 기본 옵션이 아닌 집이라면 냉장고가 먼저다.) 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 하니 냄비도 필요하고, 계란후라이를 할 프라이팬도 필수다. 그리고 쌀, 김치, 소금, 고추장, 간장, 설탕, 된장, 식용유, 마늘 등의 기본적인 재료도 구입해야 한다. 엄마찬스를 활용해 기본 아이템을 갖추고 시작하면 그나마 나은데, 어차피 반년쯤 지나면 다 떨어져서 새로 사야 될 때가 온다. 아, 정수기가 없으면 물도 매번 사먹어야 한다. 더 중요한건, 이 모든게 공과금이나 통신요금 등의 생존필수비용을 제외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의식주중 '주'와 '식'을 해결했을 뿐, '의'가 남았다. 이쯤이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지만 말이다.

 


Step2. 청소백서 - 돌아서면 집안일, 또 돌아서면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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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기 시작하면 집안의 모든 일이 다 내 일이 된다.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가 늘 하얗고 반짝반짝한 건 누군가 더러워지기 전 청소를 하기 때문이다. 하수구에 뭉친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 것도, 주방 싱크대 배수구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쓰레기통이 넘치지 않고 주변이 늘 깨끗한 것도, 방바닥을 맨발로 걸어도 먼지가 밟히지 않는 것 모두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엄마의 손길이 집안 구석구석을 매일같이 쓸고 닦은 덕분이지만 우리는 그걸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얼마나 집안일에 소홀했는지 깨닫는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바닥은 이틀만 안닦아도 발바닥이 찝찝하고, 화장실 세면대는 일주일만에 누런 물때가 끼기 시작한다. 행주는 삶아서 소독해주지 않으면 여름엔 쉰내가 나고, 비가 온 뒤 창틀은 시커먼 먼지가 잔뜩이다. 혼자살이를 시작하면 이 모든 일이 집안일이자 내 일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매일, 혹은 일주일이나 한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해주지 않으면 집은 더이상 집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꼴로 바뀐다.

 


Step3. 밥 해먹기 귀찮아, 뒤처리는 더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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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먼저 확인하는건 밥은 그나마 사먹을 수 있기 때문. 학교에 갔다와서, 혹은 회사를 다녀와서 피곤한 몸으로 드러운 집안꼴을 수습해 사람 사는 태를 갖춰 놓으면 밥을 직접 해먹는 일이 기다린다.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배달앱을 켜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해먹으나 시켜먹으나 해야될 뒤처리가 있는건 똑같다. 해먹으면 설거지가 나를 기다리고, 시켜먹으면 분리수거가 나를 기다린다. 쓰레기 처리가 더 쉽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배달음식이 담긴 일회용 용기도 최소한 물로 헹궈두지 않으면 냄새가 나거나 벌레가 꼬인다. 상시 분리수거가 가능한 곳이라면 바로 가져다 버리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정배출일이 될때까지 집 한켠에 쌓아둬야 한다.

참고로 sns에서 보던 그림같은 플레이팅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해보면 안다. 준비엔 최소 30분, 먹는덴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장식을 위해 먹지도 못하고 맛도 없는 허브를 샀다가 이돈이면 파가 몇 단이지, 하는 현타가 찾아볼 수 있다. 라면을 냄비째로 가져다 먹는건 지지리 궁상이 아니라 설거지거리를 하나라도 더 줄이기 위한 생활의 지혜다.

 

 


Step4. 세상이 날 가만두지 않아

 

일단 주거지 확보를 위해 내 통장을 확인하고 부동산을 돌아보면서 챙겨할 것들이 많다. 조금이나마 월세를 아끼기 위해 전세대출을 받으려 은행을 방문해야 할 일도 있을거고, 부동산 계약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등기부등본 및 임대차계약서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운이 좋아 행복주택이나 청년주택에서 살림을 꾸린다면 준비할 서류 목록은 더 길어진다. 이사 후에도 전입신고 등 챙겨둘 일이 많고, 내집이 아니면 이 과정이 1-2년에 한번씩 찾아온다. 힘겨운 과정을 뚫고 세대주가 되면 각종 공과금 고지서가 나를 반긴다. 대학생 신분으로 자취를 시작한다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학교에선 하나도 배우지 않은 사회인의 고달픔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서류 처리를 끝내고 나면 끝일까 싶지만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살다보면 정말 별의 별 일들이 다 생긴다. 이사하기 전엔 멀쩡해 보였던 집에서 갑자기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오른다거나 내 이웃이 알고보니 층간소음 유발자거나 하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난다. 갑자기 건물이 넘어간다든가 화재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아도 뒷골이 당기기 시작한다. 집주인에게 연락해 결로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밤마다 탭댄스를 추는 이웃에겐 정중히 공동생활 예의에 대해 전해야 한다. 말로 원만하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집이 없는 자의 설움만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층간소음은 내집이라도 답이 없을 수 있다.


Step5. 튼튼한 멘탈 갖추기 - 외로움에 매몰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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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건 모두 외부 요소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다. 나는 지금 정말 혼자 살고 싶은가? 그리고 정말 혼자 살아낼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자유와 행복이 가득할 것 같은 혼자살이엔 나태와 방종으로 인한 혼란과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이 존재한다. 제발 깨우지 말라고 부탁하면서도 막상 지각하고 나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등짝을 내리쳐 깨워주는 손길이 아쉽다. 밥먹으라고 벽과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가 거슬리다가도 막상 혼자살면 적막한 공간이 두려워 보지도 않는 TV를 켜두게 된다. 그리고 아플때 따끈한 죽 한그릇과 침대맡을 지켜주는 다정한 온기가 사라진 순간 고독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게 된다. 오롯이 혼자 해낼 수 없다면, 혼자 견뎌낼 수 없다면 혼자살이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언젠가 혼자 살게 된다.

혼자 살이의 장점도 물론 많다. 내 취향대로 집을 꾸미고, 원하는 시간에 먹고 잘 수 있다. 사실 며칠 청소 안한다고 안 죽는다. 준비없이 시작했지만 막상 하다보니 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독립적인 '나'를 찾아낼 수도 있다. 게으르고 싶을만큼 게으르고, 온전히 내 리듬에 맞춰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혼자 살이를 시작하는건 위험하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 살이를 하게 될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마음을 먹고 필요한 준비를 마치면 혼자 살이를 시작하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